그놈의 노키즈존
약속을 잡으려고 식당이나 카페를 찾다 보면 종종 노키즈존이라고 표시해둔 가게들을 마주하게 되곤 한다. 영유아, 미취학아동, 넓게는 초등학생까지도 출입을 금하는 곳을 자주 발견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할 루프탑같은 곳에 대한 가이드 수준을 벗어나서, 아예 공간 자체에서 대상을 거부하는 것.
나는 작은 인간을 예뻐하고 귀여워하고 가까이서 반응을 보고싶어하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잘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섬세한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노키즈존이라는 곳은 소비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나는 성년을 한참 넘긴 성인이고,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있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드문 사람이지만, 그래서 노키즈존이라고 적혀있어도 나에게는 전혀 달라지는 점이 없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뒤쪽의 선택지로 둔다. 가끔 유난떤다는 소리도 듣지만, 나 한 명이 안 간다고 해서 매출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내 돈으로 그런 정책에 힘을 실어주고 싶지는 않다. 아이들이 싫다고 굳이 노키즈존을 찾아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그럼 굳이 노키즈존은 피해서 가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 거다.
노키즈존이 왜?
노키즈존의 등장 원인으로 손꼽히는 항목들을 분류해보면 다음 세 가지이다. 어린이들로 인해 발생하는 소음, 어린이에 대한 배려를 구실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보호자들, 안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업주들이 져야 하는 책임. 보호자의 지도를 따라 올바르게 성장하는 것이 어린이들의 역할일 것이다. 필요한 어린이 용품을 챙기고 아이들에게 오픈스페이스에서 갖춰야 할 예의를 가르쳐주는 등의 어린이 케어는 보호자가 하는 것이 당연한 책임이다. 가게에서 유아의자나 식기를 구비해주거나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다. 어린이의 미숙함은 어린이라서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성인들의 행동 뿐이다. 그런데 노키즈존이라는 표현은 그 문제가 어린이들에게만 존재하는 것처럼 강조한다.
나의 편의를 위해 노키즈존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은 당신들만 살고 끝인가요? 우리 세대에서 지구가 멸망할 예정인가요? 시끄럽고 실수하는 어린이들을 참아주고 가르쳐주고 성숙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성인의 역할이다. 교육은 애들만 있는 데 가서 하라는 말도 너무 무책임하다.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며 주위를 관찰하고, 이런 공간에선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고 배우는 것이 사회화 과정이다. 어린이들이 또래들만 있는 곳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 아니지 않나. 애들이 시끄러워서 쫓아낼거면… 자 이제 애기들과 중년아저씨들 모임 중 어느 쪽에 '통제 불가능하고 위협적이며 시끄러운 진상'이 더 많은지 다시 한 번 생각해봅시다. 어른들은 쫓아내기 부담스러우니까 큰소리내기 어려운 약자한테 화살 돌려 화풀이하는 행동밖에 안 되는거다.
어리다는 이유로 민폐끼치는 것이 용납되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다. 라고 답하고 싶다. 누구나 어렸다. 누구나 신체통제능력이 부족하던 시기가 있었고, 누구나 수많은 훈련을 통해서야 근육 협응력을 키웠다. 누구나 주변 환경을 수없이 관찰하고 습득하며 사회 규범을 익혔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가까운 주양육자의 꾸준한 관심과 노력과 기다림이 있었고, 주변 사람들의 인내와 배려가 있었다. 자신은 태어나자마자 점잖고 1인분 할 줄 아는 어른이었는 줄 아는 사람들 진짜 많다.
"애가 아니라 어른이 문제"라면 더더욱 이 방법은 틀렸다
"애는 그럴 수 있지. 그런데 너는 그러면 안 되지." 거의 밈이 되어버린 유명한 말이다. 나는 이 말이 정말 중요한 부분을 짚고 있다고 본다. 모든 문제와 갈등은 어린이를 제대로 케어하지 않은 보호자로부터 출발한다. 덮어놓고 어린이들이 싫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아이들을 교육하려 노력하지 않고 방치하거나 아이를 핑계로 과한 서비스와 친절을 강요하는 보호자들이 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면서 노키즈존이 아니라 노 배드 패런츠 존이 맞지 않냐는 의견도 있고, 케어키즈존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노 배드 패런츠 존은 길다는 이유로 케어키즈존이 그나마 조금 더 쓰이는 것 같다.
1) 아이 케어는 보호자가 하는 것이 당연하고, 2) 공간에서 어린이 가구나 식기 준비 등 어린이를 위한 정책을 운영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배려이고, 3) 조금 소란이 생기더라도 주변 사람들이 양해해주는 것은 사회를 이루는 성인들의 역할이다. 노키즈존은 이걸 다 무시하고 어린이들이 문제라는 표현이라 싫고, 대신 제시된 표현들은 2,3번은 모르겠고 1번에만 책임을 부여하겠다는 의사 같아서 싫다. (그래도 그나마 케어키즈존이 낫다고 생각하긴 한다.) 어쨌든 셋 다 안 썼으면 좋겠다. 어린이가 문제고, 어른들이 어린이의 행동을 나쁜 의미로 주시하고 있다는 걸 굳이 내걸어야겠다는 그 악의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다.
사회는 특정 약자 그룹을 거절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면 안 된다. 배제당하는 경험을 주면 안 되는거다. 어린이가 미숙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린이가 어린 것은 어린이가 선택한 것이 아닌데, 왜 그것이 어린이가 배제당할 이유가 되어야 하는가. 혐오 가득한 표지판을 내걸 게 아니라, 문제 행동을 하는 어른들이 부끄러워지는 시선을 가진 사회가 되어야 하는 거다.
진짜진짜 마지막으로 이것만 들어봐
인간이기 때문에, 모두가 사회구성원이기 때문에 존중받아야 함이 마땅하다는 전제 자체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너무나 이상적이고 낙관적인 주장이라고 하는 말도 어찌 보면 타당할 수도 있겠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로 본인을 위한다면, 본인이 언젠가 서럽고 속상한 경험을 하지 않으려면, 나 역시 모든 타인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고. 사실 나 역시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배리어프리나 노인, 장애인, 약자 배려 정책을 언젠가의 나를 위해서 지지하는 면이 가장 크다. 부모님, 가족, 가까운 친구, 애인이나 배우자, 심지어는 나 스스로까지, 언제까지 젊고 어리고 건강할지 어떻게 장담하는가.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 중 어린아이가 영원히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근데 가끔 이런 소리도 듣는다. "XXX가 왜 약자야?" 이 글에서는 어린이에 대해서 말했지만, XXX에는 수많은 말이 들어간다. 어린이, 여자, 장애인, 노인. 인터넷에서 본 게 아니라 직접 들은 말들이라는 게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근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은 나는… 설득할 자신이 없다. 수많은 종류의 약자들이 사회구조적으로 배척당하고 혐오당하며 살아온 그 긴긴 역사를… 이쯤되면 그냥 알고 싶지가 않은거지. 그냥 그렇게 살아라.
어디서 시위를 하거나 큰 소리로 외칠 용기는 없는 사람이지만, 이렇게 궁시렁거리는 걸 들은 누군가 한명쯤은 생각이 바뀔 때가 있다. 세상은 그렇게 조금씩 바뀌는 사람들이 모여서 크게 한 발 나아가는거다. 그 가끔의 기억을 아주 작은 희망으로 삼아서 오늘도 있는 힘껏 불평을 해본다.
'1. 일상과 생각 > 1.1. 생각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년 플래너 구성 고민 (0) | 2024.12.02 |
---|---|
미니멀리스트 맥시멀리스트 (1) | 2024.11.22 |
헌혈의 집 가는 걸 좋아한다. (6) | 2024.11.21 |
위선이 위악보다 나쁘다는 말이 싫다 (1) | 2024.11.17 |
혼비행 징크스 (15) | 2024.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