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과 생각/1.1. 생각조각 25

노키즈존이 싫다

그놈의 노키즈존약속을 잡으려고 식당이나 카페를 찾다 보면 종종 노키즈존이라고 표시해둔 가게들을 마주하게 되곤 한다. 영유아, 미취학아동, 넓게는 초등학생까지도 출입을 금하는 곳을 자주 발견한다. 조심하지 않으면 위험할 루프탑같은 곳에 대한 가이드 수준을 벗어나서, 아예 공간 자체에서 대상을 거부하는 것. 나는 작은 인간을 예뻐하고 귀여워하고 가까이서 반응을 보고싶어하는 성향의 사람은 아니다. 보호나 도움이 필요한 존재를 잘 살피고 돌볼 수 있는 섬세한 인간도 아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노키즈존이라는 곳은 소비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나는 성년을 한참 넘긴 성인이고, 자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녀가 있는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드문 사람이지만, 그래서 노키즈존이라고 적혀있어도 나에게는 전혀 달라지는 점이 ..

미니멀리스트 맥시멀리스트

얼마 전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봤다. 쓰는 물건만 잘 두는 게 미니멀리스트이고, 안 쓸 물건까지 다 들여 쌓아두는 게 맥시멀리스트라고. 물건이 많아도 미니멀리스트일 수 있고, 그보다 적어도 맥시멀리스트일 수 있다고. 미니멀리즘의 삶을 추구하겠다고 가진 물건들을 우수수 처분해놓고 나중에 다시 구매하는 사람들을 몇 봤다. 그렇게 다시 필요한 물건들을 두 배의 비용을 들여 다시 쟁여놓고, 나는 미니멀리스트로는 살 수 없는 인간인가봐- 한다. 그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과 시간을 구성하는 최소 요건이 그 정도 볼륨인거였다. 일반적으로 '최소한의' 물품만 가지고 있는 것을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필요한 물건만' '자기가 잘 쓸 것만'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둘은 비슷하게 보일 수 있지만 ..

헌혈의 집 가는 걸 좋아한다.

사실 나한테는 봉사활동이라기보단 자기효능감을 쉽게 채우는 방법 중 하나이다. 너무 되는 게 없는 기간에 마음이 힘들 때, 헌혈이라도 하고 오면 '오늘은 나 좀 쓸모있었다' 싶은 기분에 힘이 약간 난다. 고등학생 때 기숙사 학교여서 주중엔 내내 학교 안에만 있어야 했었는데, 달에 두어번 쯤 공식적으로 학교 밖을 나갈 수 있는 활동이 있었다. 거점국립대와 교류하면서 지도를 받는 뭐 그런 활동이었는데,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해당 교수님은 이름 빌려주고 지원금 받고, 학생들은 생기부 세특실적 채우고 연구실 구경하는 수준이었던 것 같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고등학생 나부랭이가 지거국 교수님께 최신연구분야에 대한 간단한 세미나를 직접 듣고, 대학원생들의 실험 과정을 어깨너머로나마 보고 배울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위선이 위악보다 나쁘다는 말이 싫다

위선이라는 말을 사람을 욕할 때 쓰는 것도 싫고, 위선이 위악보다 나쁘다는 말도 싫다. 위선이 왜 나쁜가? 겉보기로는 선한 척 하면서 뒤로는 나쁜 짓을 하는 거, 물론 싫을 수 있다. 꺼림칙하다. 그런데 세상에 아주 작은 흠도 없이 완벽하게 선한 사람이 있나? 사람은 모두 다면적이다. 누구나 이런저런 면을 가지고 있지만, 좋은 면을 보이고 나쁜 면을 억누르고 숨기고자 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런 마음과 행동이 사회의 규칙이 지켜질 수 있는 기반 중 하나다. 이런 태도 자체를 위선적이라 비난할거라면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규칙과 신뢰부터 부정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절대 그러지 않지. 그 규칙과 신뢰 사이에 생기는 틈에 기생해서 이득을 보고 있으니까. 그러면, 위악은 왜 위선보다 나은가? 선..

혼비행 징크스

누구나 '난 이상하게 A하면 B하더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친구는 반장부터 국회의원까지 자기가 투표한 대상은 늘 당선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운동경기를 직관하면 꼭 이기는 승리요정이라고 했다. 나는, 혼자 비행기를 타면 십중팔구 옆 사람과 말을 트는 징크스가 있다. '징크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지만, 이런 류의 미신적 현상을 나타내는 적절한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으니 그냥 징크스라고 하자. 혼자 하는 비행이라 함은, 지인이 아예 없는 이동일정이 기본이지만, 같은 비행기를 타는 일행이 있어도 자리가 멀어서 사방 5줄 사이에는 아는 사람 없이 나 혼자일 경우도 포함된다. 오히려 근처에 일행이 있으면 비행 시간 내내 밥먹을 때 빼곤 묵언수행 할 때가 많은데, 어찌..

'학생같아요~ ㅎㅎ'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요즘 시대 도심지에서는 딱히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 유독 이웃에게 살갑고 친화력이 좋은 분들이 있다. 같은 동에 사는 이웃분 중, 오며가며 마주치고 택배 놓는 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금 친해진 선생님이 한 분 계시다. 집에 붙어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자주 뵙지는 못하는데, 볼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해주셔서 기분이 좋아지는 분이다. 어느 날 아주 늦은 새벽에 퇴근한 다음 애매하게 늦은 시간에 출근하는 길에 선생님을 마주쳤다. 잠만 자고 나올거라 가방도 랩탑도 노트도 없이 차키만 달랑달랑 들고 퇴근했기 때문에, 출근길 옷차림과 소지품도 굉장히 단출한 상태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선생님은 '늘 생각하는데~ 학생같아요~ ㅎㅎ' 하고 인사를 하셨는데 순간 어..

소개팅 성공 꿀팁으로 "네가 계산해라"를 말하는 사람

A, B와 밥을 먹었다. 식사일 기준 며칠 전 A가 소개팅을 했단다. 상대가 쓰레기여서 친구의 안전을 위해 헤어지라고 하는 것 빼고는 연애사업에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게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시작할까말까 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재미있다. 여자인 A는 상대가 꽤 마음에 들어서 잘 만나보고 싶다고 했고, 애프터 약속이 잡혀 있다고 했다. 소개팅 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애프터 때는 어디에 가서 뭘 먹을 건지,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그 때 남자인 B가 조언 하나를 했다. "애프터 때 네가 계산하면 바로 게임끝이야." 엥. 여자가 계산하면 남자는 그걸로 홀딱 빠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모르게 이게 좀… 마음에 걸렸다.솔직히, 데이트비용은 상황에 따라 당사자들이..

비혼주의라는 말을 좀 신중하게 썼으면 좋겠다

나는 결혼을… 안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중년, 장년, 노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독신의 삶을 늘 고려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나를 비혼주의나 독신주의라고 소개하진 못하겠다. 혼자보다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확신할 만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할 의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슬슬 이 나이쯤 돼서 연애를 하고 있지도 않고, 딱히 소개팅에 적극적이지도 않다보니 '너 뭐 비혼주의 그런거야?' 라는 소리를 듣긴 한다. 아뇨, 비혼주의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직 비혼인건데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겠는데 잘 맞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네요. 못 만나면 안 하는거죠 뭐. 하고 마는데, 그럼 또 '결혼할 생각 없어? 비혼주의네~' 해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굳이 정정하진 않지만, 속으..

우영우 고래 소품을 찾아서 (결론: 실패)

혹시 누군가 또 아직까지 나처럼 찾아헤매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해서 남겨둔다. 드라마를 잘 보는 편이 아닌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9회차인가? 까지를 봤던 것 같다. 공개되던 시기에 눈 수술을 받느라 친구가 집에 며칠 머물면서 생활을 도와줬는데, 그 때 친구가 보고싶다고 해서 같이 1-2회를 보고(엄밀히는 친구가 보고 나는 듣고) 이후로 이어서 쭉 보다가 중간에 그만뒀던듯. 박은빈배우의 명연기도 인상깊지만, 사실 나는 오프닝에 나오는 여러 요소들이 참 좋아서 늘 오프닝을 스킵하지 않고 봤다. 음악도 구성도 소품도 연출이 다 너무 좋아서…. 예쁜거 최고. 미술팀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그 중에 이 키네틱 모빌에 꽂혔다. 투명한 하늘색 돌고래에 나선형 코일이 빙글빙글… 너무너무너무 예뻐… 사고 싶어서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