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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 성공 꿀팁으로 "네가 계산해라"를 말하는 사람

김쥬🍀 2024. 11. 10. 00:07

A, B와 밥을 먹었다. 식사일 기준 며칠 전 A가 소개팅을 했단다. 상대가 쓰레기여서 친구의 안전을 위해 헤어지라고 하는 것 빼고는 연애사업에 이런저런 조언을 하는 게 전혀 의미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시작할까말까 하는 커플의 이야기를 듣는 건 정말 재미있다. 여자인 A는 상대가 꽤 마음에 들어서 잘 만나보고 싶다고 했고, 애프터 약속이 잡혀 있다고 했다. 소개팅 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애프터 때는 어디에 가서 뭘 먹을 건지, 같은 이야기를 즐겁게 했다. 그런데 그 때 남자인 B가 조언 하나를 했다. "애프터 때 네가 계산하면 바로 게임끝이야." 엥. 여자가 계산하면 남자는 그걸로 홀딱 빠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왠지모르게 이게 좀… 마음에 걸렸다.

솔직히, 데이트비용은 상황에 따라 당사자들이 결정할 일이긴 하다. 좀 더 만남을 원하는 사람,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사람, 나이가 많은 쪽, 만남을 제안한 쪽, 여러 가지 기준이 있겠다. 번갈아가면서 내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겠고, 소개팅 애프터 단계에선 아직 아무 사이도 아닌데 빚지기 싫어서라도 더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을 더 선호하거나 옳다고 보는지, 혹은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사람마다 다르겠다. A의 경우에는, 처음 만났을 때 남자분이 2차까지 다 계산했고, A도 상대분이 마음에 들고, 그래서 애프터는 자기가 낼 거라고 하긴 했다.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그래도, '데이트비용을 같이 부담하는 _개념녀_ 모습을 보여주면 남자는 뿅간다' 라는 발언은… 뭔가 진짜, 너무 구리게 느껴지는거야.

대체 어느 지점에서 이게 그렇게 거슬리는걸까, 생각을 해봤다. 으레 여자들은 남자가 데이트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졌을것이며, 그렇지 않음을 어필하는 것이 이성으로서 매력적이라고 여기는 부분인가? 내 기준에서 그런건 상대와 함께하는 시간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고 그냥 예의에 가까운데, '그거 하나면 끝'이라는 표현은 그런 태도가 사람 자체의 다른 매력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가장 임팩트 있다고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인가? 아니면, 도대체 '어디서' '이런' 가치판단기준을 체화했을까 하는 미심쩍음인걸까? 어쨌든 이게 썩 유쾌하게 '음 그렇군 맞아맞아' 하고 받아들일 조언은 아니라는 기분이었다. 다들 그냥 웃고 넘기는 분위기라서 '내가 괜히 예민한걸수도 ㅎ' 하고 모른체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랬다.

생각해보면, 이성적인 호감을 전제로 만난 사람은 아니었지만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예전에 스냅 모델 활동을 할 때, 서울권에서 작업하는 작가가 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대전까지 내려온 적이 있었다. 주말을 할애해서 직접 왕복 4시간을 운전해 내려오고 컨셉 관련 소품 구입비용이라든가 필요 시 공간 대여, 시간이 늦어질 때 본인 숙박비용 같은 것도 다 작가가 부담하겠다고 했었다. 나이차도 꽤 났고, 그 분은 사회인이고 나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게까지는 취미활동 수준에서 좀 과한 것 같았다. 가지고 있던 의상 외에 따로 소품이나 공간대여가 필요하지 않는 컨셉을 잡고, 시간도 낮으로 잡았다. 그러고도 사진 몇 장 덜렁 보고 그 품을 들여 만나러 와주는 게 감사했어서, 작업 후에 식사 비용도 작가가 다 내겠다고 했었는데 계산할 때쯤 지갑에 가지고 있던 현금을 다 털어서 (그래도 모자랐지만…) 슬쩍 꽂아드렸다. 그리고 그 때 들었던 말이, "와… 개념녀… 감동…" 이었다. 그땐 그 말에 기분이 좀 미묘하다, 정도였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개념녀'라는 말 안에 내재된 고정관념, 그러니까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금전적' 비용을 얼마나 지불하는지 여부만으로 여성을 평가하는 게 불편했던거구나 싶다.

이런 일들을 마주할 때마다 참 마음이 편치 않다. 더군다나, 내가 참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이런 면을 발견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몇 가지 걸리는 지점들 때문에 거리감을 느끼기에는 다른 부분들에서 내가 좋아하는 점이 너무 많은 사람들이어서. 모든 사람이 내 생각과 완벽하게 들어맞을 수는 없고, 인간은 서로서로 일정 부분을 참아가며 살아가는 것이겠지만, 그리고 그 사람들도 나의 어떤 면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눈감아주고 있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냥 그렇다고.

나는 사람은 엄청 좋아하는데 싫어하는것도 엄청 많아서 정말 큰일이다. 이런 거 티 안내고 상호작용 잘 하는게 사회성일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