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을… 안 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고, 중년, 장년, 노년이 되었을 때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독신의 삶을 늘 고려하지만, 그렇다고 타인에게 나를 비혼주의나 독신주의라고 소개하진 못하겠다. 혼자보다 더 좋은 삶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확신할 만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할 의향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제 슬슬 이 나이쯤 돼서 연애를 하고 있지도 않고, 딱히 소개팅에 적극적이지도 않다보니 '너 뭐 비혼주의 그런거야?' 라는 소리를 듣긴 한다. 아뇨, 비혼주의까지는 아니고… 그냥 아직 비혼인건데 좋은 사람 있으면 만나겠는데 잘 맞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네요. 못 만나면 안 하는거죠 뭐. 하고 마는데, 그럼 또 '결혼할 생각 없어? 비혼주의네~' 해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굳이 정정하진 않지만, 속으로 아 그거 아닌데… 싶어지곤 한다.
미혼은 혼인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로서 언젠가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 대신 사용하자고 제시된 말이 비혼이고, 비혼'주의'와 비혼은 엄연히 다른 말인데. 독신과 독신주의만큼 다른 말이고, 완벽이랑 완벽주의가 같은 말이 아닌 것과 같다. 앞선 말은 상태를 의미하고, 후자는 그를 지향하는 신념인데.
여러 블로그에서, SNS에서, 하다못해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도 가끔 보이는 이야기가 있다. 원래는 본인이 비혼주의였는데 이 사람이 나를 너무나 사랑해줘서 or 내가 이 사람을 너무 사랑하게 되어서 비혼주의 신념을 깨고 결혼하게 된 행복한 러브스토리를 들어달라는 외침. 그건 사실 님이 비혼주의가 아니셨던거세요……. 그냥 비혼 상태이셨던거세요… 좋은 사람 만나서 행복한 거 좋죠, 축하드립니다. 연애는 재미있고, 안정적인 가정은 편안하죠,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전 지인이 좋은 사람 만나면 진심으로 기뻐요 정말로 축하해주고 행복을 빌어줘요. 근데 그 얘기를 하기 위해서 '무려 비혼주의였던 내 마음을 흔든 세기의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꼭 필요한가요?
비혼주의를 그냥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쯤으로 대충 뭉개버리고, 비연애 상태인 자신을 '연애를 못 하고' 있다거나 '결혼을 못 하고' 있다고 말하기 싫어서 비혼주의라고 말하고, 결국 마지막엔 누군가와 결혼을 하면서 결과적으로 비혼주의라는 표현을 자신의 낭만적인 러브스토리의 소재로 쓰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그냥 미혼/비혼이 아닌가? 비혼'주의'라고 말할거면 앞으로도 독신일 것을 선택하는건데.
남들에게 '난 비혼주의라 연애도 딱히~ 결혼도 안해~' 했다가 대뜸 청첩장 내미는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개인적인 신념으로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그래놓고 나중에 꼭 다 결혼하더라. 너 딱 5년만 두고보자.' 하는 조롱을 듣는건데. 너무 주의깊지 못한 발언이 아닌가 싶어지는 것이다.
물론 신념이야 여러 경험을 거치며 바뀌기도 하는거니까 그럴 수 있다. 특히나 아직 결혼이 멀게 느껴지고 주변의 의견에 동조하기 쉬운 20대 초중반에야 쉽게 말할 수도 있겠다. 근데 성인 되고 졸업도 하고 사회생활도 조금 해본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 '난 비혼주의라서 연애도 결혼도 안할거야!!' 하고 외치다가 헐레벌떡 이성 만나 1-1.5년 안에 식 올리는 케이스가 꽤 자주 보인다. 이건 나한테는 그냥… 결혼할 애인은 없는데 지금 독신이라고 말하자니 자기한테 하자가 있어보이는 자격지심이 들고, 결혼을 하고는 싶은데 조급한 마음을 티내기는 싫어서 대충 미혼 아니고 비혼주의라고 둘러대다가 기회 생기자마자 잽싸게 결혼까지 추진시켜놓고, 자기가 뱉어둔 말을 수습하려고 '진짜 사랑은 이런거라는 걸 깨달았어~' 하고 포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너무 심한 비난같나? 글쎄, 비혼주의 아무데나 갖다 붙이다 결혼한 기혼들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비아냥거리는 소리 듣는 비혼은 이런 말 해도 참작될만하지 않나.
'1. 일상과 생각 > 1.1. 생각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학생같아요~ ㅎㅎ' (2) | 2024.11.13 |
---|---|
소개팅 성공 꿀팁으로 "네가 계산해라"를 말하는 사람 (6) | 2024.11.10 |
우영우 고래 소품을 찾아서 (결론: 실패) (5) | 2024.09.05 |
김쥬의 사회성 해석 (feat. 벼르) (1) | 2024.06.26 |
나의 어중간한 행동양식 유형에 대한 소고 (0) | 2024.06.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