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자료/5.3. 후기

[🍽먹부림] 대전 갈마동 차의계절 | 예쁘고 맛있고 즐거운 식사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김쥬🍀 2022. 1. 1. 02:50

사실 맛에 그렇게 민감한 편은 아니다. 맛 평가의 스펙트럼이 0에서 100까지 있다고 가정한다면, 대충 20부터는 그냥저냥 별 불평 없이 잘 먹는다. 80과 85, 그리고 90과 95를 민감하게 가려내지도 못하고, 그냥 맛있다~ 하고 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00에 가까운 음식을 먹었을때도 30의 식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건 아니거든. 그래서 가끔은 조금 무리해서라도 좋은 밥을 먹으러 품을 들이곤 한다. 

그런데 '좋은 밥'이 어떤건가, 잠시 생각해보면 꼭 비싸고 맛있는 것! 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물론 어느 정도 이상의 맛이 있어야 하는 건 맞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그 식사를 할 때의 감정이 어떤 기억으로 남는가가 되게 중요하다. 누구랑 먹었는가, 사장님이 좋았는가, 주변 다른 손님들의 분위기나 식당의 음악이 어땠는가, 가게를 고르고 예약하고 찾아가고 필요하다면 기다리는 시간들에 불쾌한 점이 없었는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이 가게에서 무시당하지는 않는가. 이런 다양한 부분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은 가게들을 계속 되새기고 재방문하곤 한다. 

대전 갈마동 차의 계절. 아마도 2021년 6월이었던 애프터눈티세트

언젠가 '커피를 줄여야지!' 하고 생각한 뒤 카페 대신 티룸을 가보자, 하고 찾아본 적이 있었다. 갈마동 차의 계절은 그 때 알게 된 곳이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방문하기 묘하게 번거로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위시리스트에만 담아뒀었는데, 너무 좋아하는 친구가 대전에 온다기에 예쁜 식사를 함께 하고 싶어서 냅다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대성공! 좋아하는 사람과, 예쁘고 맛있는 음식을, 즐겁게 대화하면서 먹을 수 있었고, 사장님도 친절하셨고, 가게가 너무 부산하지도 않았다. 내가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가게였던거지. 음음. 딱 하나 아쉬운 점이라면 화장실…? 하지만 두시간쯤 안 가면 그만임. 그건 사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너무 좋은 기억이었던 곳이다. 


위에 써둔 글만 보면 내가 꼭… 좋아하는 식당들을 이곳저곳 정해두고 자주자주 찾아가는 그런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 나는 외출이 그렇게 잦은 편이 아니다. 그래서 "아, 차의 계절 되게 좋았는데!" 생각만 여러 번 하고 하반기에 추가로 더 방문해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2월 중순 쯤이었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티세트는 시즌에 맞춰 구성이 변할 테고, 지금은 딸기가 나오는 시즌이고, 그러면… 딸기 애프터눈티세트가… 나오지 않았을까……?

찾아보니까 역시나였다. 사진을 봤는데 이건 먹어야 한다, 싶어서 연구실 언니들을 꼬셨다. 연구실 셧다운 기간에 같이 가실래요ㅜㅜ? 조르고 졸라 날짜를 정했는데, 하필 1월 중간에 잠시 메뉴를 쉬는 기간에 걸렸다. 어쩔 수 없이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냥 냅다 혼자 날짜를 잡았다. 그런 걸 혼자 먹으러 가? 하고 친구들이 물었지만 나는 브런치집도 스테이크집도 불판 삼겹살집도 놀이동산도 뷔페도 혼자 잘 다니는 사람이다…. 그렇게 드디어! 2회차 방문을! 했다! 

예약 컷을 잘못 받아서 좌석이 빠듯하다고, 너무 미안해하시면서 디쉬 준비하시는 바 쪽으로 자리안내를 해주셨다. 사장님은 정말 크게 미안해하셨지만 사실 나는 그게 더 좋았다. 준비하시는 거 바로 앞에서 볼 수 있고, 선생님이랑 중간중간 수다도 떨 수 있으니까. 혼자 다닐 때 조용히 내 할일을 하거나 주변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다른 분들과 이야기하는것도 재밌단 말이야. 어쨌든 먹는데 부산스러워서 신경쓰이겠다고 미안해하시길래, 나는 오히려 구경할 수 있어서 좋은데, 저 때문에 준비하시는 게 비좁고 불편하신 거 아닌가 걱정스럽다고 말씀드렸다. 

웰컴티 보리차! 여름엔 (어쩌면 당연하지만) 얼음잔에 주셨었는데! 

하필 이 날 예약이니 주차 문제니 이래저래 정신이 없으셔서 메뉴 준비에 시간이 조금 소요됐었는데, 사실 나는 티세트 먹는 것 말고는 아무 일정이 없는 1인 손님이었기 때문에 전혀 상관이 없었다. 책 좀 보다가, 구경 좀 하다가, 멍때리다가, 하면서 기다린 끝에 웰컴티를 먼저, 그리고 애프터눈티세트를 받았다. 도시락 같은 함에 아기자기 담겨 나오는데 너무 귀엽고 예뻐서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보자마자 너무 행복했다. 안 그래도 단 거 좋아 + 딸기 좋아 인간인데 단 거 + 딸기 + 예쁨 하니까 행복이 3배. 

이쁘잖아!!!!!!!!!!!!!!!!!!!!!!!!!!! 그리고 이거 다 먹으면 은근히 배가 찹니다요… 밥 된다 밥. 

차는 대강의 취향을 말씀드리고 추천을 부탁드렸었다. 솔직히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이 되게 부담스럽고 번거롭고 어려운 거 아는데, 입에 안 맞아도 불평 안 할 자신 있으니까, 그리고 이 정도는 가볍게 도전해볼만한 범위 안이라고 나는 느껴서, 내가 아는 범위에서 고르는 것 보다는 추천을 받고 싶었다.

차 종류나 맛, 향을 거의 가리지 않고 (사실 세밀하게 구분하진 못 하는 쪽에 가까움) 잘 먹지만 과일향이 너무 강한 것은 즐기지 않음, 그리고 오늘은 홍차를 먹고 싶은 기분임. 딱 요정도 말씀드렸는데 추천해주셨던 Fortnum & mason Celebration. 향이 정말 풍부해서 좋은 차인데, 식으면 수렴성이 꽤 올라오긴 한다고 조심스럽게 권해주셨다. 그치만? 제 입에는? 별로? 안 떫어서? 그냥 냠냠 맛있게 잘 먹었다. 추천해준건데 입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스럽다고 하셨는데, 1) 결정은 내가 한 것이니 입에 안 맞아도 정말 괜찮습니다 2) 근데 맛있는데요?!?! 했더니 기뻐하셨다. 귀여우심 ㅋㅋㅋ

샐러드 한 입, 차 한 모금, 샌드위치 하나, 차 한 모금, 한참 먹다 보니 음식은 남았는데 차를 다 마셔버려서 더운 물을 좀 더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새 차를 드릴까요?! 하시곤 크리스마스 홍차 몇 개를 보여주시며 골라보라 하셨다. 덕분에 신나게 한 종류 더 마셨다! 원래 이렇게 차를 더 마시면 추가금을 내야 할 것만 같았는데, 그냥 친절하고 따뜻하게 내어주셨다. 해피!! 


애프터눈티세트는 계속 있었는데 올 겨울 (특히 크리스마스와 연말) 유난히 예약이 많고 빨리 찼다고 하셨다. SNS에 입소문이 난 것이 아닐까요, 했더니 이미 알고 계시더라! 트위터에서 한 번 화제가 되었는데, 선생님은 트위터를 안 하셔서 바로 알지는 못하고 티클래스 수강생분이 알려줬다고 하셨다. 근데 1)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이 너무 예쁘게 찍혔다, 2) 세트 밸런스 맞추느라 그 사진과는 구성이 조금 바뀌었다고 멋쩍어하셨다. 그치만 실제로도 너무너무 예뻤고, 시즈널 세트의 구성 변경이야 흔한 일인걸요! 아, 그런데 이렇게 쓰면서 되짚어보니까 정말 이런저런 사소한 수다를 많이 떨긴 했던 것 같다. 사소하거나 사적이거나 가벼워서 못 적은 잡담도 꽤 있는 걸 보니 나도 되게 신이 났었나 보다. 이런 재미에 혼자 다니지. ㅋㅋㅋㅋㅋ 예쁜 플레이팅에 맛있는 음식에 즐거운 이야기까지 해서 엄청 행복한 식사였다. 이게 힐링이지, 응. 

사실 챙겨간 책도 있고 그냥 그 공기가 너무 좋아서 오래오래 더 앉아있고 싶었는데, 뒤에 다른 예약도 있어 보이고 해서 두시간쯤 뭉개고 있다가 일어났다. 다음번에는 사람이 조금 적을 때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구석에 앉아서 차 홀짝거리면서 책 읽다 오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