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에 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앞으로 긴 시간동안 살 거고(희망사항), 집에 있는 시간도 늘어날 것 같고, 기왕 살 거라면 편하게 쉴 수 있으며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고, 등등. 그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화분이다. 내 화분들을 조금 더 좋은 환경에 두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친구들이 조금 또라이같다고 했는데 진짜다…. 아니 근데! 니들이 화분 키워봐!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니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육이 키우기가 붐이었던 적이 있다. 2016-7년 언저리였던 것 같다. 꽃이나 초록 친구들을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내게도 다육이 키우기에 도전해보라는 권유가 몇 차례 있었는데, 그 땐 자신이 없어서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0대 때 손 댔던 화분을 죄다 죽여버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난 화분은 키우면 안되는 것 같아, 했었더랬다.
그러다 2018년 12월 어느 날, 작은 선인장을 들였다. 지인의 추천으로 시작한건데, 사실 정확히 어떤 대화를 통해서 그런 결론이 났었던건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어느 날 선인장을 키워야겠다- 싶었다. 무작정 꽃집에 들러 선인장 하나 들이려구요, 하고선 눈에 꽂힌 친구를 데려왔다. 꽃집 사장님께 종을 여쭤봤었는데 정확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셔서,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다. 소정 선인장이라고 설명이 적혀있는 사진과 가장 닮은 것 같기에, 백소정 종류겠거니- 하고 있다. 이번엔 잘 돌봐야지, 하면서 이름도 지어줬다. 뾰족이.
뾰족이를 시작으로 조금씩 화분이 늘어났다. 연구실 선배가 장기 출장을 가며 잠시 맡게 되었던 장미허브도 무성하진 않지만 어찌저찌 살아남아 부피를 늘려가고 있고, 번식 시기가 되어 자루를 뻗은 나비란 포기를 나눠주셔서 나비란 화분도 생겼다. 작년 생일엔 율마 화분을 선물받아 열심히 키우고 있고, 올 봄에는 풍성한 칼란디바 화분을 들였다. 이름도 붙여가며 열심히 키웠었는데, 장미허브는 꺾꽂이를 반복하다보니 화분에 붙이는 이름의 의미가 희석되었고, 칼란디바는 아직 적당한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 미정이다.
요즘은 색이 있는 식물 화분을 더 들이고 싶은데, 스탠드 자리가 부족해서 고민이다. 2-3층짜리 스탠드를 새로 구할지, 아니면 조금 비좁더라도 1단 받침대를 옆에 더 놓을지. 너무 높은 위치에 화분을 두는 것도 (화분한테) 좋지 않다고 해서 가능하면 낮은 스탠드에 놓고 싶은데, 다른 사람들이 키우는 사진을 보면 별로 상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새 친구를 데려오기 전에 이 고민을 해결해야 한다.
꽤 오랫동안 내 손을 떠나 친구에게 맡겼던 기간도 있었고, 너무 정신없이 바빠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채 방치됐던 기간도 있었는데 어찌저찌 다들 잘 살아남아줬다. 며칠 전 꽃집에 들러 흙갈이를 부탁드렸을 때, 뿌리 상태는 나쁘지 않으니 물은 주던대로 주면 되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예??? 정말요??? 설마요……???' 했을 정도로 기특한 친구들이다. 비실비실해지는 모습을 보곤 화들짝 놀라 뒤늦게 케어해주는 게으른 주인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하려 노력은 하고 있다. 앞으로도 애들 아프지 않게 잘 돌볼 수 있길. 언젠가 초록손으로 거듭나고 말테다.
'1. 일상과 생각 > 1.1. 생각조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마이걸 유아의 춤이 정말 오져서 쓰는 글 (0) | 2021.06.06 |
---|---|
꽃을 사는 습관이 있다. (0) | 2021.06.03 |
고맙다는 말 (0) | 2020.07.19 |
내가 끔찍이도 싫어하는 표현 (0) | 2020.07.19 |
지나간 사람 이야기 (0) | 2020.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