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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승강장에서 있었던 일

김쥬🍀 2021. 11. 1. 01:20

본가에 다녀올 때는 주로 KTX를 이용한다. 장시간 버스를 타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본가에서 오가기에 터미널과 기차역이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전에 처음 왔을때와 비교해서 본가에 다녀오는 빈도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기마다 한 번 정도는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대전역을 꽤 방문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도 몇 가지 있다. 언제 한 번은 택시승강장에서 인상깊은 일이 있었다. 

대전역 서광장 쪽에는 택시승강장이 있다. 원래는 승강장이 한 줄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는지 택시 진입로와 승객 대기줄을 정리해서 각각 두 줄로 나누어졌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1승강장에 한줄서기를 하고, 택시가 오는 순서대로 가서 탄다. 승강장에 택시가 들어올 때는, 택시가 진입로 가이드를 따라 들어오면 대전역 안쪽까지 빙 둘러 승객 대기위치까지 오는 구조이다. 괜히 둘러 가는 길이 싫어서인지, 기사님들은 택시 줄이 늘어져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가이드를 무시하고 옆길을 뚫고 들어오곤 한다. 그런데 그 방향으로 택시가 들어오면 승객 대기위치보다 조금 앞쪽으로 자리하게 되기 때문에, 대기하고 있는 승객의 시야 각도에 들어오지 않아 곧바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일요일,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택시를 기다리는 줄이 무척 길었던 밤이었다. 체감상 줄이 20m쯤은 되어 보일 정도로 사람이 많아서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주말의 끝이라 그런지 짐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택시가 띄엄띄엄 들어와서 줄이 빠지는 속도도 아주 더뎠다. 한참 택시가 들어오지 않아 줄이 멈춰있다가 한 대가 천천히 진입했다. 기다리던 택시가 없으니 진입로 가이드를 정석대로 둘러 오지 않고 옆길로 꺾어 들어왔는데, 제일 앞에 서 계시던 분이 그걸 보지 못하고 가만히 서 계셨다.

한 10초쯤 지났을까? 내 뒤에 서 있던 분이 엄청난 욕을 하기 시작했다. 눈치 없는 X, 병X, 굼벵이X, 수많은 변주를 줘 가며 욕을 쏟아내는데, 줄이 길어 당사자분은 못 들으셨겠지만 내게는 너무나 또렷하게 들렸다. 듣기만 해도 불쾌했고, 당사자에게 들릴 거리였어도 이렇게 마구 욕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하니 더욱 귀가 오염되는 기분이었다. 

늦은 밤 시간에 피곤하고 짜증날 것도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겨우 10초쯤 멍때렸다고 살아있는 사람한테 그렇게 욕을 해야만 했을까? 택시가 경적 두어 번 울리니까 바로 가서 타셨는데 그걸 보면서도 한참을 궁시렁거리더라. 어차피 택시가 아주 가끔 한대씩 왔기 때문에, 그거 조금 늦어진다고 택시 탈 시간이 5분 10분씩 늦춰지는 것도 아니고, 그거 조금 빠릿하게 탄다고 획기적으로 대기시간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는데. 실재하는 사람에 대해 잠시를 참지 못하고 비난을 해대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았고, 주변에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이 비속어를 듣는 것도 개의치 않는 그 태도가 너무 어리석어보였다. 그렇게 기다리는 게 싫었다면 승강장에 서 있지 말고 나가서 콜택시를 부르든가, 애초에 차를 주차해놨든가, 데리러 올 사람을 불렀든가 했어야 옳다. 냅다 쌍욕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 언어습관이라는 게 고치기 쉽지 않다는 건 안다. 나도 어린 시절엔 어린 생각에 비속어를 문장마다 섞어쓰곤 하던 때가 있었고, 고치느라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지금도 사석에서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많이 빡치는 상황에선 욕한다… 그것도 꽤 잘… 고쳐야 하는데…) 그래, 너무 피곤하거나 화가 나거나 하면 욕 한 번 안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하지만 그게 습관성이 되면 듣는 사람이 불쾌한 건 둘째치고 화자 본인의 격이 떨어져보이게 되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왜 그렇게 많을까. 어쨌든 그 사람 덕분에 언어습관을 제대로 가꿔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