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상과 생각 94

겨울엔 귤잼을 나눈다

생각은 적게, 시간은 많이 드는 일을 하다 보면 왠지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 든다. 내게는 주로 요리가 그렇다. 양파 카라멜라이징, 소스 졸이기, 잼 만들기. 양파 카라멜라이징과 수제 토마토소스는 몇 번 해본 다음 너무 번거롭고 귀찮아서 이제는 잘 안 하는데, 과일잼은 철이 되면 생각이 나서 한번씩 만들게 된다. 특히 귤은 매번 박스 단위로 사게 되어서, 귤쨈을 겨울에 꼭 만들게 되는 듯 하다. 언제였지? 제주에 사는 친구가 귤잼이 너무 맛있게 되었다며 깜짝선물을 해준 적이 있다. 귤도 잼을 만들어? 생각해보면 당분이 있는 모든 것들로 잼을 만드니까 당연히 귤로도 만들 수 있는건데, 이전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거라 되게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 때 먹었던 귤쨈이 내가 이후에 만들었던 모든..

속상한 일은 쏟아내고 바로 잊는 게 좋은 거지만

가끔은 그게 잘 안 되는 이슈들이 있다.일기장에도 두리뭉술하게 쓰고, sns에도 속상한 순간에 우다다 올렸다가 시간 지나면 지우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뭐였더라? 하고 흐려지도록 두는 게 좋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매니징 할 수 없는 문제로 속상한 일이 반복해서 생기면 아무래도 어떻게 노력해도 자꾸 떠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아무래도 남자인 친구들이 많은 편이고, 그러다 보니 나나 친구들에게 애인이 생기면 약간의 입장정리가 필요해지곤 한다. 우리가 오랜 시간 별의 별 흑역사를 다 알고 있는 친구인데다 서로의 취향존에서 완벽하게 아웃이기 때문에 연애감정이 생길 리가 없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 보통은 나만 슬프다. 내 ..

택시 승강장에서 있었던 일

본가에 다녀올 때는 주로 KTX를 이용한다. 장시간 버스를 타기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본가에서 오가기에 터미널과 기차역이 크게 차이가 나지도 않기 때문이다. 대전에 처음 왔을때와 비교해서 본가에 다녀오는 빈도가 많이 줄긴 했지만, 그래도 최소한 분기마다 한 번 정도는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대전역을 꽤 방문하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이래저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도 몇 가지 있다. 언제 한 번은 택시승강장에서 인상깊은 일이 있었다. 대전역 서광장 쪽에는 택시승강장이 있다. 원래는 승강장이 한 줄이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였는지 택시 진입로와 승객 대기줄을 정리해서 각각 두 줄로 나누어졌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냥 1승강장에 한줄서기를 하고, 택시가 오는 순서대로 가서 탄다. 승강장에 택시가 들어올 때는..

새 친구들

주말에 분갈이를 할 계획을 세웠었다. 봄에 몇 개는 흙갈이를 해줬지만 그 때 이사를 못 한 식물들도 있고, 성장이 왠지 뜸해진 식물도 있고, 이후에 새로 데려온 아이들도 있어서 슬슬 여름이 지나간 듯 하니 이제 옮겨줘야겠다 싶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 분도 사고, 흙도 사고, 주말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전에 볼 일을 보고 끝내주게 맛있는 점심을 먹은 뒤 귀가해서 분갈이를 해야지, 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는데 어라. 집 앞에 화분 트럭이 와 있다.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가까이 가서 요거조거는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어봤더니 사장님이 대답은 않고 본인이 키울거예요, 엄마 갖다줄거예요? 하고 웃었다. 왠지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회로가 돌아가서 잠시 쪼끔 기분이 나빴지만 그냥 별 뜻 아니었을거..

오마이걸 유아의 춤이 정말 오져서 쓰는 글

나는 연예인에 크게 관심이 없다. 재밌는 걸 발견하면 방송이나 예능, 드라마 클립들을 찾아보긴 하지만, 특정 방송인을 좋아한다거나 정보를 찾아본다거나 하는 일은 흔치 않다. 팬클럽에 가입하고 노래를 앨범마다 챙겨듣는 가수는 몇년째 아이유뿐이었고, 주변에서 아이돌 이야기를 하면 멍때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재작년 즈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친구 한 명이 오마이걸이라는 걸그룹을 아주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언니가 보여주는 영상들, 클립들을 재미삼아 몇 번 보다가, 어느새 유튜브에서 오마이걸 예능을 찾아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입덕부정기는 짧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했고, 나는 미라클이 되었음을 인정하기로 했다.오마이걸의 여러 가지 영상들을 찾아볼 때 늘 느끼는 점이 있다. 노래 실력, 춤 실력, 타고난 음색의..

꽃을 사는 습관이 있다.

오래 전부터 꽃을 좋아했다. 주로 좋은 일이 있을 때 건네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예뻐서 그런건지, 그냥 좋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도 그랬다. 그 중에 한 친구는 기분이 유독 좋거나 유독 나쁜 날 꽃집에 들러 꽃을 산다고 했다. 기분이 좋으면 그걸 기념하기 위해서, 나쁘면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서. 언니가 조금 울적해했던 어느 날, 같이 길을 걷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눈에 띄는 꽃집에 들렀다. 색이 다른 장미 세 송이를 고심해서 고르고, 길이를 짧게 포장해달라고 요청한 언니는 기분이 조금 나아진 듯 보였다. 그러고는 언제 더 산 건지 작은 장미 한 송이를 내게 건넸다. 나도 같이 기뻐진다면 더 행복할 것 같다고. 그 날부터 나도 종종 꽃을 사는 습관이 생겼다. '아, 오늘 꽃 사고 싶은 기분인데.' ..

식물 친구들

올해 초에 베란다가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 조금은 무리해서라도 그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여기에 앞으로 긴 시간동안 살 거고(희망사항), 집에 있는 시간도 늘어날 것 같고, 기왕 살 거라면 편하게 쉴 수 있으며 좋아하는 것들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싶고, 등등. 그 수많은 이유들 중 하나는 화분이다. 내 화분들을 조금 더 좋은 환경에 두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친구들이 조금 또라이같다고 했는데 진짜다…. 아니 근데! 니들이 화분 키워봐! 애정이 생길 수 밖에 없다니까!!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다육이 키우기가 붐이었던 적이 있다. 2016-7년 언저리였던 것 같다. 꽃이나 초록 친구들을 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내게도 다육이 키우기에 도전해보라는 권유가..

잠 못 드는 밤

뭔가 불편해 잠들지 못하는 밤이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뜨고 있어도 자꾸만 무언가 신경이 쓰이는 그런 시간. 얼굴을 스치는 공기가 살짝 추운건지, 어쩌면 약간 무거운 이불 속에 조금은 더운 건지. 저녁으로부터 벌써 아홉 시간이 지나버려 찾아온 허기인지, 아니면 가득 채웠던 뱃속이 아직도 불편한건지. 뭔가를 먹어야 할지, 아니면 마셔야 할지. 이유 모를 갑갑함에 숨쉬는 것조차 의식하게 되는 그런 밤.실눈을 뜨고 휴대폰 시계를 본다. 당장 잠들어도 두 시간. 지금 잠들면 몇 시간을 잘 수 있는지 세는 순간 이미 그른 거라고, 누군가 그랬다. 애써 눈꺼풀로 눌러봐도 금방 차오르는 불안 사이, 반쯤은 몽롱하고 또 반쯤은 또렷한 느낌에 한 가지 사실만 명확하게 느껴진다. 내일은 망했다는 것.이런저런 핑계를 찾..